• 목록

비행기를 탈 때 승무원이 나눠주는 작은 봉지의 간식.
그 중에서도 유독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이 바로 ‘땅콩’입니다.
작고 짭조름한 이 견과류는 비행기 안에서 기본 제공되는 대표 간식처럼 여겨졌고, ‘기내 땅콩’이라는 말은 하나의 상징처럼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땅콩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비행기의 공식 간식처럼 자리 잡았던 걸까요?
그리고 지금은 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비행기 땅콩’의 역사와 배경,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보려 합니다.

기내에서 땅콩이 처음 제공되기 시작한 시점은 1950~60년대 미국에서 본격적인 상업 항공이 발달하면서부터입니다.
항공 산업이 성장하면서 점차 기내 서비스의 일환으로 간단한 스낵을 제공하게 되었고, 이때 많은 항공사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땅콩’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가볍고 보관이 쉽고, 비교적 저렴하며, 맛도 좋아 승객 대부분이 선호할 수 있는 간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포장 단위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조리나 특별한 보관 조건 없이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땅콩이 기내 간식으로 자리를 잡게 된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비행 중 기압이 낮아지면 사람의 미각이 둔해지기 때문에, 평소보다 자극적이고 짠 음식이 맛있게 느껴집니다.
이런 환경에서 짭조름하고 고소한 땅콩은 기내 간식으로 딱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땅콩은 포만감을 주는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해 짧은 비행에서도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기내 땅콩을 대표적으로 제공한 회사로 꼽힙니다.
사우스웨스트는 초창기부터 땅콩을 승객에게 제공하며 ‘Peanut Airline’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고, 자사의 브랜딩에도 땅콩을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땅콩 포장을 통해 항공사 철학과 위트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땅콩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변화하게 됩니다.

땅콩은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식품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땅콩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심한 경우 호흡 곤란이나 쇼크를 일으켜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비행기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땅콩을 섭취하거나, 그 가루가 퍼지는 상황은 민감한 사람들에게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 항공사들은 점차 땅콩 제공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게 되었고, 대신 쿠키, 프레첼, 과일칩 등의 대체 스낵으로 변경하는 추세가 생겼습니다.

대표적으로 2018년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땅콩 제공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으며, 대한항공도 땅콩 관련 사건 이후 스낵 구성을 재정비한 바 있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일부 승객이 땅콩 제공에 불만을 제기하고 기내 안전 문제로 이어지면서 항공사들이 관련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항공사 측에서도 사전에 알레르기 관련 공지를 하고, 요청 시 땅콩을 제외하거나 안전한 식품으로 대체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땅콩은 기내 서비스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중장년층 이상의 세대에게는 땅콩이 항공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낯익은 간식으로 자리잡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행의 추억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예전엔 비행기 타면 무조건 땅콩 줬었지.”라는 말은 그 시절 항공 여행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또한 몇몇 저가항공(LCC)이나 소형 항공사는 여전히 땅콩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특히 국내선이나 단거리 국제선에서는 기내 서비스가 제한되는 대신 소포장 간식으로 땅콩이 여전히 활용되며, 고객의 기호에 맞춘 선택지가 다양하게 제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땅콩 외에도 다양한 견과류 혼합 제품, 씨앗 스낵 등이 땅콩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으며, 건강과 식이요법을 고려한 구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제공되는 땅콩은 단순한 간식을 넘어 여행과 관련된 문화적 상징이었습니다.
그것은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의식이었고, 고소한 땅콩을 입에 넣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비행의 편안함이 시작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이 강조되면서 땅콩은 더 이상 모든 사람에게 ‘기본값’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땅콩을 떠올리며 비행기의 낭만을 기억합니다.

이제는 간식 하나도 개인의 건강, 기내 환경, 사회적 인식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물로 선택되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땅콩은 줄었지만, 그 대신 더 다양하고 안전한 간식들이 등장하고 있고, 기내 서비스는 승객의 편의를 위해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땅콩은 사라졌지만, 그 안에 담긴 기억과 감정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